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하심 가문 (문단 편집) === 오스만 제국 === 1517년 [[오스만 제국]]이 [[맘루크 왕조]]를 정복한 이래 [[히자즈]] 지역 역시 오스만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당시 [[메카]] 아미르였던 바라카트 2세(بركات الثاني, Barakat II)는 오스만 황제가 [[칼리파]]임을 받아들이며 종주권을 인정하였고, 오스만 역시 메카 아미르가 히자즈를 다스리는 것을 용인하였다. 이후 히자즈의 행정구역으로 '[[제다]] 성(ایالت حبش, Eyālet-i Ḥabeş)'이 세워졌다. 또한 오스만 정부는 메카 아미르를 직접 임명하여 계승권에 영향을 행사하였는데, 항상 카타다흐 씨족 인물 중에서 선출하는 것은 변함없었다. 그리고 히자즈 지역의 통치권은 메카 아미르와 이집트 총독, 제다 총독이 같이 쥐었다. || [[파일:Jeddah_Eyalet,_Ottoman_Empire_(1795).png|width=100%]] || || 1795년 제다 성 || 그러다가 1750년대 [[아라비아 반도]]에 [[와하브파]] 세력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결국 1803년 와하브파 [[사우드 왕조|사우드 가문]] 출신의 압둘아지즈 빈 무함마드(عبد العزيز بن محمد, Abdul-Aziz bin Muhammad)가 메카를 공격하였고, 당시 메카 아미르였던 갈리브 이븐 무사이드(غالب بن مساعد, Ghalib ibn Musa'id)는 제다로 피난하였지만 그곳 역시 포위당하였다. 갈리브는 메카로 돌려보내져 사우드의 봉신이 되었다. 히자즈를 다른 세력에게 빼앗긴 오스만 측은 이집트 총독 [[메흐메드 알리]]를 불러 다시 히자즈를 되찾게 하였다. 1813년 무하마드 알리가 와하비 세력을 물리치고 히자즈를 되찾아오는데, 자기만의 아랍 국가를 세우겠다는 야망을 품은 그는 메카 아미르를 자기가 선출하여 히자즈 지역의 패권을 쥐려 하였다. 이를 위하여 그는 카타다흐 씨족을 '자이드 씨족(ذوي زيد, Dhawu Zayd)'과 '아운 씨족(ذوي عون, Dhawu Awn)'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자이드 씨족인 갈리브를 폐위시키고 아운 씨족인 무함마드 이븐 아브드 알 무인(محمد بن عبد المعين بن عون, Muhammad ibn Abd al-Mu'in)을 등용하였다. 이렇게 씨족을 나눔으로써 무하마드 알리는 메카 아미르들을 더 수월하게 조종할 수 있었다. 1840년 런던 조약(Convention of London)으로 무하마드 알리가 히자즈에서 권력을 잃고 이 지역은 다시 오스만 제국의 통치하에 들어왔다. 오스만은 다시 자이드 씨족을 등용하였다. 그리고 1872년 히자즈의 행정구역을 개편하여 '제다 성(ایالت حبش, Eyālet-i Ḥabeş)'을 '헤자즈 주(ولايت حجاز, Vilâyet-i Hijaz)'로 바꾸었다. 총독이 제다에서 메카에 직접 거주하면서 히자즈의 권력은 아미르와 총독이 양분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이 둘 사이에 종종 충돌이 있었다. 19세기 동안 히자즈의 주요 도시였던 [[메카]], [[메디나]], [[제다]]에는 대부분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등지의 비아랍권 무슬림들이 거주하고 있어 다국적인 분위기를 띠었다. 1856년 무함마드 이븐 아브드 알 무인이 메카 아미르로 재위하면서 다시 아운 씨족이 집권하였다. 그리고 그의 손자인 [[샤리프 후세인]]으로 이어졌고, 훗날 후세인은 아랍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 [[파일:Hejaz_Vilayet,_Ottoman_Empire_(1900)_v2.png|width=100%]] || || 1900년 헤자즈 주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